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저자와 함께 숨쉬는 살아있는 독서, 지식라이브러리 블로그입니다.
북세미나블로그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61,365total
  • 8today
  • 25yesterday
2009/01/09 09:36 저자를 만나다


누구의 과거가 아닌 그들의 현재

여행을 갈 때
,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에 가야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도 보고 못사는 나라도 보았을 것인데,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궁금했다.

 


우리
60년대도 이랬다 저랬다라고 하시죠. 인도나 파키스탄에 가보면 그 나라아이들은 아직 신발도 안 신고 못살아요. 못살지만 그런데 그 나라는 우리나라의 60년대가 아니라 인도의 현재이거든요. 거기가 소득이 낮다고 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삶의 방식이 그런 거에요. 그런데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그 사람들은 못 사는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해주려고 하죠.


그 나라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먹고 사는 것이 충분하고 행복하거든요
.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못산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자본을 대고 개발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어떤 책에서 봤는데 그 나라의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선진국의 문물을 접하면서 욕심이 자꾸 생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도시에 나가고, 도시에서 돈이 필요하니까 구걸을 하게 된 거죠. 농사를 짓고 잘 살고 있던 사람이 타락을 하게 된 거에요.


그것을 보면서 저희의
60년대가 아닌 그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정을 하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못산다고 못 사는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에요. 동남아나 인도나 파키스탄에 여행을 가도 꼭 유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특히 그 나라에는 정신 문화가 발달 되어있어서 물질 문명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어요.

 



세계일주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는
김성만 저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앞으로는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대학을 그만두고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사람들이 너무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출퇴근하면서 계속 일의 노예가 되는 거죠. 사람의 인생은 길지 않은데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저는 그것을 여행을 통해서 찾아보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틀에 박힌 사회일지라도 여유를 찾고 마음에 힘이 될 수 있는 고통 속에서 여유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꿔보라고 한다
.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시간이 없어서 비용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말하고, 여행을 가더라도 여행사에서 짜준 프로그램대로 관광지를 느낄 틈도 없이 여기서 저기로 빠르게 이동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 지구본을 보며 이 세상은 정말 넓구나, 과연 세계일주가 가능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김성만 저자는 시속 20km, 두 발로 두 바퀴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14,200km의 선을 그었다.


달려라 자전거의
김성만 저자는 풍만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풍경 뿐만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느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한 권의 책에 수많은 사진을 실어두었고, 블로그에서도 그 사진들을 만나볼 수가 있다.

 

 

언제 어떤 이유로 자전거와 사진에 매료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980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누나 셋과 자유롭게 자랐다는 것,
다소 내성적이고 순종적인 외양을 가졌지만 상당히 반항적인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
초등학교 때 악대부에서 트롬본과 유포늄을 연주했는데 당시 연주를 지도해주시던 선생님을 아직도 존경한다는 것,
온 동네를 자전거를 타고 누비다 뒷산에 버려진 차량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을 찍은 사진이 부산시가 주관하는 '환경 사진 공모전'에서 열네 살이라는 나이로 상을 받았다는 것,
대학에 가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판박이같이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 대학을 일치감치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 여행을 계획을 세웠다는 것,
그러기 위해 필요한 체력과 지금 등을 갖추고자 5년간의 부사관 생활을 자처했다는 것,
제대하자마자 유라시아 횡단 여행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
그렇게 2001년부터 준비해온 여행을 2006 6월에 시작하여 2007 9월에 마치고 일 년 뒤 책으로 묶어냈다는 것,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먹는 음식 및 자는 습관이 너무나 다른 나라들을 자전거를 통해 하나의 선으로 이으며 나만의 '세계'를 확장함과 동시에 나만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
5,000
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타고 오르며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생생히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 자연을 닮아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것
이것들이 그를 구성하는 몇 가지 조각들이다
.

달려라 자전거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성만 (책세상,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북세미나블로그
2009/01/09 09:22 저자를 만나다


432
일간의 여행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지 않았을까?


먹고
, 자기 위해서는 그 나라말을 배워야 하고 현지인과 소통을 해야 할텐데, 어떻게 배웠는가?

 


보통 영어로 많이 소통을 하는데
, 현지인들하고 소통할 때는 영어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어떤 나라에 도착을 하게 되면 그 나라 식당에 가서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는 거에요. 첫번째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밥 주세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얼마에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고 제가 수첩에 적어서 말을 배우는 거에요. 영어로 대화를 시도 했을 때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현지 말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얼마에요 했을 때는 관심을 많이 보여요. 그러면서 바디랭귀지를 이용하며 그 분들하고 소통을 하면서 하나씩 배우는 거죠.


그렇게 배우다 보며 말을 구체적으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계속 현지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느낌이 와요
. 제가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지 못하겠는데, 그런 느낌이 오거든요. 그러면서 대화가 되는 거에요.

 


긴 여행에서 수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겠지만
, 그 중에 한가지를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티베트 독립운동 1인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제가 티베트
1인 시위를 했었어요. 티베트 여행을 할 때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가장 기억 나는 에피소드가 제가 중국인 아저씨랑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자전거로 가다가 만나서 함께 가게 되었는데, 티베트 자전거 여행은 가다가 만나면 같이 갈 수 밖에 없어요. 길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이 가야 해요. 그래서 그 중국인 아저씨랑 3일 정도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3일째 되는 날 도시에 도착을 해서 각자 볼일을 보고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그 아저씨가 항상 티베트는 중국이라고 하는 거에요
. 저는 티베트는 티베트고, 티베트 말이 있다고 말해서 항상 말싸움을 했어요. 저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 도시에서 헤어질 생각을 했고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티베트는 지금 독립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 그런데 그 아저씨는 잠시 헤어졌던 사이에 볼에 그림을 그리고 온 거에요. 왼쪽 볼에는 중국 국기를 그려오고, 오른쪽 볼에는 중국 나라 모양을 빨갛게 그리고 왔어요. 그리고 그 아저씨는 군복 상의를 입고 있었거든요. 물론 편한 복장이라 그랬을 텐데 마침 그림까지 그린 거죠.


밥을 먹으러 갔는데 저는 티베트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 티베트 음식도 중국음식이라고 그러는 거에요. 아무튼 티베트 음식점 앞에 갔는데 그 음식점 앞에 일하는 여성이 두분 있었어요. 한 스무 살쯤 되어보이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문을 확 닫으면서 꽉 잡고 있는 거에요. 귀신을 본듯한 표정으로 정말 공포스러운 표정이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밀치면서 밥 먹으러 왔다고 하고 식당 2층에 올라가서 앉았어요. 앉았는데 10분 넘게 메뉴판도 안 갖다 주고 손님도 많이 오는 식당이었거든요. 저는 많이 미안했어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그래서 죄송하다고 하고, 메뉴판을 가져와서 주문해서 먹었어요. 그 때 저는 티베트 독립에 대해서 가장 크게 느끼게 된 첫번째 계기였어요.

 

그 후에 제가 포르투갈에 갔어요. 포르투갈이 제일 마지막 도시였어요. 마지막 날 리스본에 늦게 도착했어요. 자전거 타이어 펑크가 나서 걸어서 몇 시간을 헤맸어요. 리스본 시내를 새벽까지 헤매다가 1 넘었는데, 마침 음식점이 있었는데 중국음식점이 있었어요. 들어가서 음식을 시켰어요. 그런데 한가지밖에 요리가 안되었어요. 화궈라고 중국 요리인데, 15유로로 포르투갈에서는 굉장히 비싼 편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먹게 되었는데
, 거기 식당 주인하고 직원들이 모두 티베트 사람들이었던 거에요. 자신들은 티베트에서 왔다고 하고, 저는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티베트를 지나왔고 티베트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 사람들은 티베트에서 살 수가 없어서 피난을 온 거에요. 포르투갈까지 와서 힘들게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티베트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 해줬어요
. 고향에 대해 그리워할 테니까요. 그 사람들은 티베트로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음식들을 많이 갔다 줘요. 음료수도 내어주고 먹을 거리도 더 내어주고. 너무 고맙고 그랬는데 또 돈을 안받겠다는 거에요. 당신은 우리의 손님이라면서. 그래서 저는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 저는 바로 리스본을 떠났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항상 그분들에게 해줄 게 없을까 생각을 했어요.


3
월에 티베트 독립운동이 터진 거에요. 마침 그 때 이거다, 내가 그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독립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중국 영사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게 된 겁니다. 물론 제가 티베트 사람들이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은 안되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제가 불편해서 못 있을 것 같았어요.

달려라 자전거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성만 (책세상,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북세미나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