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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9 13:33 저자를 만나다

“함께 의논하자”

지금 어느 회의실에서나 들릴법한 말을 세종대왕은 즉위하자마자 신하들에게 전했다고 해요. 엄숙하고 권위적일 것 같은 조선시대 왕의 방에서 ‘회의’라는 것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생소하네요. 드라마에서 보듯이 신하들이 왕을 중심으로 좌우정열을 하여 앉아 있고, 신하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고 나서는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는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어째든 세종대왕은 ‘국정대토론’의 장을 열어서 신하들에게 말과 아이디어를 쏟아놓게 했대요.




“소통하지 않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

설정된 목표에 왜 도달해야 하는지, 지금 변하지 않으면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일깨워가면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나아가길 원한 거죠. 이것이 세종대왕이 가졌던 리더십이 아닐까요?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아셨던 거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경영하셨던 거예요.




‘저 사람은 사람들도 잘 따르고 아이디어도 좋고 다 마음에 드는데 게으른게 문제야’

                                       VS
‘저 사람은 게으르지만 주위에 사람도 많고 아이디어가 풍부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종과 같은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자부할거에요. 그런데 세종처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 사람은 사람들도 잘 따르고 아이디어도 좋고 다 마음에 드는데 게으른게 문제야’와 ‘저 사람은 게으르지만 주위에 사람도 많고 아이디어가 풍부해’는 같은 말이지만 참 다르게 느껴지죠. 같은 사람을 표현해도 그 사람의 장점을 중요시 하는지 단점을 중요시 하는지에 따라서 사람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세종은 후자처럼 사람을 보았대요.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재를 구하는 기본 원칙이라 보셨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그것이 세종대왕의 힘이었나 봐요.


“oo 말대로 하라”

회의 중에 어떤 의견을 냈을 때, 그 의견 별로라는 것보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가 더 난감하죠. 그 때 누군가가 “좋아, oo 말대로 하라”라고 해주길 간절히 바라죠. 리더가 그런 말을 해준다면 금상첨화죠. 그런데 세종은 그랬대요. 회의 중에 좋은 의견이 나오면 그렇게 바로 힘을 실어줬대요. 이러니 신하들이 세종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이런 것이 지금 우리의 문자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세종처럼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박현모 (미다스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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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세미나블로그
2008/12/12 10:48 저자를 만나다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를 아시나요?


아마 당신도 이 난해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일 거예요. 호모 모빌리쿠스는 휴대전화로 모든 일상을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래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아침 알람을 시작으로 일정체크, 메모, 게임, TV, 음악, 사진, 전화, 문자 메시지, 녹음, 인터넷, 네비게이션 등등등 잠들기 전까지 항상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곁에 두고 있잖아요.



                                                                                                     일러스트레이션·임혜경 

왜 그런지 생각해보셨어요?

왜 자명종 시계가 울려야 할 아침에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고, 달력에 적어야 할 일정을 휴대전화에서 확인하고, 수첩에 적어야 할 메모를 휴대전화에 입력하고, 집에 TV가 있는데도 굳이 휴대전화로 드라마를 보고...        

왜 그럴까요? 단지 분산되어 있던 것을 휴대전화라는 한 기기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일까요? 음...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봐요. 정여울의 <모바일 오디세이>에 이런 말이 있어요. ‘모바일은 현대인의 감춰진 내면을 토로하는 집단적 스피커라는. 이건, 휴대전화가 더 이상 기기로써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 않을까요? 소통을 넘어서 우리의 감성을 표현하는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거죠.


이건...무엇을 대신하고 있는 걸까요?

휴대전화가 우리의 감춰진 내면을 토로하는 스피커라면, 이것 역시 예전에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았을까요? 편지? 일기? 이런 걸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지 않으세요? 스피커라고 하면 밖으로 소리를 내뿜는 건데, 감춰진 걸 표현해야 하고 타겟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알리는 그런 의미인거 같은데,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그럼, 편지나 일기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보이네요.


물어봐야겠어요!!

직접, <모바일 오디세이>를 쓴 정여울 저자에게 물어 보겠어요. 정여울 저자는 어떤 답을 해 주었을까요?

모바일 오디세이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정여울 (라이온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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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세미나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