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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3:43 저자를 만나다
한참 재테크 붐이 일어날 쯤에 유명한 저자 강좌를 들었다. 지금시기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게 되면, 몇 년만 지나면 이자의 몇배 되는 금액을 얻게 될거다. 아파트 대출이 너무 쉽게 되었던 때라 위험하다는 판단은 들지 않았다. 당시 1억 정도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살까 고민을 했던 적이라 많이 망설였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대출 받기도 힘들고, 부동산도 하락세다.
당시 대출받아 투자 했던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 대출이자 상승으로 어려움이 커져가고 있다.


<탐욕과 공포의 게임> 저자 이용재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책에서는 시장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밝히고, 우리가 신뢰하는 전문가들, 만병통치라고 믿었던 적립식 투자법 등에 대한 솔직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시장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인간심리를 행동주의 경제학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Q. 대출받아 투자하는 것이 망하는 지름길인 이유는?
 일단 아무래도 재테크와 관련해서 궁금하신 부분이 많으셔서 재테크 쪽에 국한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주식투자, 파생상품, 원자재뭐가 되었든 간에 절대로 빚내서 투자하시지 말라는 거예요. 최근에 부동산 가격에 많이 빠지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담보대출이나신용대출 받아서 아파트를 사셨던 분들이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어요. 제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계세요.

 집값이 내린 것도 분명 불만스러운 일이겠지만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빚을 너무 많이 냈어요. 보통 우리나라에서 직장인들이아파트를 산다고 하면 보통 절반 정도는 빚을 내서 사게 되는 경우인데 주식에서 그렇게 투자하면 깡통 차기 십상이죠. 그런데부동산에서는 별로 겁을 안 먹고 투자를 하셨어요.

 부동산도 마찬가지고 주식시장도 마찬가지고 다른 어떤 투자의 대상도 마찬가지고 절대로 빚내서 투자하시면 안 돼요. 그렇지 않아도사람의 심리나 두뇌구조가 시장에서 거래하는데 맞질 않는데 더 빠르게 긴장하고 공포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절대 빚을 내서투자하셔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재무구조에 맞는 한에서 합리적으로 해야 하죠.

 이익에 많이 속은 경우인데 서브프라임모기지 같은 경우이기도 하고요. 위험은 적은데 수익은 높은 상품은 세상에 없다고 보시면되요. 고위험 상품이여야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고 위험이 낮다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도 낮은 거죠. 그게 기본적인원칙이에요.

 요즘 시장을 보면 행동주의적인 관점하고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인데 지금 종합주가 지수가 절반 정도 내려온 상태고 해외 다른 시장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빠지는 상황에서는 팔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살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보통은 반대로 하죠. 고점을 찍고 있을 때 사람들이 사고 이렇게 빠지고 있으면 손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워렌 버핏 같은 경우는 자꾸 사야한다고 주장을 하잖아요.

 그 분 말이 정확한데 ‘지금은 살 때다. 다만 이 지수의 바닥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게 1년 후가 될지 3년 후가될지는 모르는데 지금 사서 한참을 기다리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 지금 폭락장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그런 부분이에요. 역발상 투자. 그걸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나 싶어요.



Q. 적립식 펀드를 기회에서 위기로 바꾸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최근에 증권사 직원들과 은행에서 펀드 파는 분들도 많이 지쳤을 거예요. 지수가 반토막이 났는데 보통 종합주가지수가 100정도내려오면 한 번씩 그 얘기를 하거든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제 바닥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7번, 8번에 걸쳐서했으니까 더 이상 가입하라는 말도 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죠.

 적립식 펀드에 대해서만 보자면 이론적으로 절대 거치식에 비해서 유리하거나 효율적인 투자방법이 아니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고요. 다만 적립식 펀드를 권하는 이유는 거치식이라는 것은 한꺼번에 큰돈을 넣어놓고 어떻게 될 것이냐를 보는 펀드인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후회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예를 들어 내게 목돈이 1억 원이 있는데 그걸 통째로 주식을 샀다가 5%가 빠지면 500만 원이 깨지죠. 직장인들 한 달 치 월급이 날아갈 수 있는데 그런 상태에 휘말리게 되는 게 굉장히 싫은 거죠.

 심리적으로 휘둘리기 쉬운 사람에게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차선의 방법으로 권장할 만한 투자방법임에는 틀림없는데 적립식 펀드가입한 분들이 최근에 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지한 분들도 많고 중단한 분들도 많아요. 그러려면 적립식 펀드를 왜가입했느냔 말이죠.

 주가가 쭉 오르는 동안 계속 주식을 사다가 빠지니까 안 산단 말이죠. 이 사람들은 분명 오르면 다시 살 거란 말이에요. 오르는동안에만 주식을 사면 단가가 너무 높아서 나중에 해지할 때 별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되고 코스트 에버리지 효과도 전혀 없게 되요.

 사실은 지금 같이 빠지는 동안에 주식을 사야만 그나마 거치식과 비슷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건데 비쌀 때는 사고 쌀 때는 사지 않는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면 적립식이고 거치식이고 아무 의미가 없죠. 그런 분들은 사실 투자를 하면 안 되는 분들인데 그런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으니 좀 안타까워요.

 제 친구가 시작은 그런 식으로 했어요. 애기가 초등학교 2~3학년인데 이 적립식 펀드는 얘기 대학교 갈 때, 유학 갈 때 깨서쓰게 하겠다고 시작을 했는데 불과 6~7개월 만에 깼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굉장히 잘못된 거죠. 그래서 왜 깼는지 들어보니까자금의 여유사정이 없었다고 해요. 여유자금이 아닌 걸 주식에 투자하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채운 거죠.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적립식 펀드를 드실 분들은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말고 넣어야 해요.만약 중단하거나 유보를 하겠다는 경우는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냐면 삼성전자, 포항제철이 부도가 날 것 같다는 정도의 우려가들면 한 번 중단을 고려해보되 아니라면 꾸준히 넣어야만 거치식에 비해 조금 덜 불리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Q. 주식투자는 이성적 판단으로 할 수 없는 게임이다.
 내가 사면 주가가 내리고 내가 팔면 주가가 다시 오르는 것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잃는 투자자들이 많고 오히려 그걸 제대로 잡아서 돈을 버는 사람보다는 잃는 사람이 많잖아요. 특히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펀드나 국내의 펀드를 봐도 실제로 돈이 많이 유입되는 것은 지수들이 고점에 왔을 때 사람들 돈이 엄청나게 들어와서 몰린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인간심리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주가가 올라야 ‘주식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탐욕이에요. 주식을 하고 있는데 주가가 내리면 두려워하잖아요. 지금도 ‘반토막이 났네.’ 하면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제가 책을 내고 난 다음에 그럼 ‘내 펀드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 공포에 빠지는 거죠.

 그런데 주가가 내려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에요. 해외 실험을 보면 우리 두뇌 속에는 편도체라는 복숭아씨 모양의 작은 부위가 있는데 이게 두려움을 느끼는 부위에요.

 예를 들어 내가 여기 앉아있는데 뱀을 확 던진다거나 곰을 마주치거나 하면 편도체에서 급격한 반응이 일어나는데 실험들을 보면 도박이나 주식투자에서 돈을 잃게 되었을 때도 편도체에서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거예요. ‘주가가 내려서 돈을 잃었으니 나는 망했다.’ 이런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무섭다는 거죠.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 원숭이를 상대로 외국에서 실험을 했는데 원숭이가 사람과 어떤 비슷한 측면이 있는지 경제적인 실험을 해보면 원숭이들도 손실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난다고 해요. 사람이 주식투자를 하다 주가가 내려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학습되거나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거든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죠. 다만 주식시장에서 본능적으로 행동해서는 돈을 벌 수가 없어요. 돈을 벌 수 없는 우리의 마음과 두뇌의 구조는 매우 정상적인 거라는 거죠. 하지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죠. 아주 인간적인 투자를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Q.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쉽게 이야기해서 센척하고 싶어서 그렇거든요. 예를 들어 연애를 하는 연인이 있는데 상대방한테, 자신이 완벽한 배우자로 비추어지길 원하는 거죠. 똑똑한 척도 하고 성격이 좋은 척도 하고 건강한 척, 예쁜 척도 하는데 이게 단순히 하는 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속인다는 거예요. 자기도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죠.

 금융시장에서의 자기기만을 보면 이런 거죠. 자기가 주식이나 펀드를 구입하기 전에 신문,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갖고 자료조사를 해서 이 주식이나 펀드는 살 만 하다는 거죠. 굉장히 합리적으로 분석을 했고 나름 똑똑한 사람이니 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는데도 사지 않고 있으면 심리학용어로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단 말이죠.

 이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자신의 분석과 맞지 않게 주가가 빠진다거나 해서 손해를 보게 되면 일시적으로 후회를 하는데 몇 년이 지나면 자기는 그때 주가가 빠질 줄 알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이걸 심리학 용어로 사후예견성향이라고 해요.

 처음에 분석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인지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투자를 하고 실제로 실패했음에도 나중에 '그때 나는 맞게 분석을 했었어.'라고 끝없이 자기를 속이는 것이거든요.

 아주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똑똑하지도 않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식의 자기기만이 왜 문제가 되냐면 단순히 돈을 한 번 잃은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절대 반성을 안 한다는 겁니다.

 보통 우리 주변에서 누구 집 아버님이 주식투자를 하셨다 얼마를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집안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양반이 그 돈만 말아먹은 게 아니에요. 굉장히 오랜 시간 여러 번 주식투자에 실패를 해서 '집 한 채를 말아먹었네. 과수원을 날렸네.'의 수준이거든요.

 자기기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반성을 하지 않고 끝없이 잘못된 방식을 고집을 하며 투자를 하고 합리화하고 그러면 금융시장에서 돈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금융시장에서의 자기기만은 세부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기 능력을 너무 믿는 과신이라든지 인지부조화 상태를 억지로 해소하려는 것이랄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난 주식에 빠질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사후예견편향 등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이 돈을 잃게 되요. 외국에 나와 있는 자료를 보고 제가 실제로 시장에서 겪었거나 주변에서 봤던 일들을 정리해서 전달을 해보고 싶었어요.



Q. 자기주관적 사고방식 프레이밍 이론.
 프레이밍은 최근에 나온 책들 때문에 개념은 알고 계실 거예요. 서울대 최인철 교수가 쓰신 책도 있고 미국에서 나온 책으로 정치 이야기인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도 있어요. 심리학에서는 굉장히 활발하게 연구가 된 분야 중의 하나에요.

 쉽게 말씀드리면 포장을 바꾸면 내용까지 바뀌는 걸로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프레이밍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예로 드는 게 컵에 물이 반이 있는데, '반이나 있네.' '반밖에 없네.'만 갖고도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컵에 물이 반있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인데도 어떻게 포장을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는 거죠.

 금융시장에서의 프레이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손실과 이익을 다르게 프레이밍하는데 있거든요. 물론 손실과 이익은 다르죠. 그런데 실제로 머니매니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백만 원 앞에 +가 붙어있는지 -가 붙어있는지만 판단을 해야 하거든요.

 숫자로 봐야 하는데 이걸 보통은 주식투자를 하게 되면 손실이 나는 종목은 반토막이 아니라 1/3토막이 날 때까지 굉장히 길게 보유를 하고 이익이 남는 종목은 금방 잘라버린단 말이에요. 그것은 이익이나 손실을 같은 숫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다르게 프레이밍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러면 사람들이 손실이 나는 계좌를 오래도록 유지하느냐? 이건 평가손일 뿐이고 나는 이것이 언젠가 반전하여 이익이 나면 팔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작은 이익은 굉장히 짧은 기간에도 날 수 있어요. 작은 손실도 짧은 기간에 날 수 있는데 큰 손실은 굉장히 긴 기간 동안 나거든요.

 길게 유지되는 손실계좌를 오래 보유하는 이유는 이익과 손실을 다르게 프레이밍한 상태에서 이익으로 돌아오길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보통은 이걸 기다리다 최악의 상황에 가서 손절을 하게 되죠. 그럴 때가 보통 바닥인 경우가 많고요.

 프레이밍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손실을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투자를 하면 안 되거든요. 투자를 하려면 손실에 대해 너무 가슴 아프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물론 1~2년 보유한 계좌가 반토막이 났는데 가슴 아파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죠. 그분들은 가슴 아파하다가 너무 오래 갖고 계신 거죠. 그런 편향이나 실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이용재 -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후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를 거쳐 메리츠증권과 부국증권 등의 상품운용부서에서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을 거래했다. 이 책 다음에는 시장과 인간이라는 화두를 들고 보다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 사람냄새 물씬 나는 르포를 쓰고 싶어한다.

책소개 - 경제기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장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밝히고, 우리가 신뢰하는 전문가들, 만병통치라고믿었던 적립식 투자법 등에 대한 솔직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시장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인간심리를 행동주의 경제학을 빌어 설명하고있다.

‘탐욕과 공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적립식 펀드, 차트분석 등 우리가 시장에서 의사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들을 하나하나 허물어 나간다.


탐욕과 공포의 게임
이용재 지음/지식노마드


저작자 표시
posted by 혜민아빠
2008/11/24 11:59 저자를 만나다
박지성이 구단주가 된다면 잘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드물일이지만 상상 못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전문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 크로스오버와 더불어 빠르게 리더십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 신완선님을 통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보자.


Q. 박지성이 구단주가 된다면 운영을 잘할 수 있을까?
박지성이 축구 구단주가 된다면 상상이 가나요? 마이클 조단이 농구 구단주가 되면 상상이 갈까요? 구단주들은 대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마케팅도 하고 홍보도 하고 스카우트도 하고 교육도 하고 그러죠. 박지성은 공차는 친구인데 갑자기 공은 안 차고 홍보를 하고 이러면 우리가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박지성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공차는 전문가로 기억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마케팅, 홍보, 재무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하는 생각이 들고 설사 많이 안다 하더라도 공차는 박지성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실제의 실력에 공감해주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리더십은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믿질 않고 안 따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분야의 전문이 경영에 필요한 경영리더십을 갖추었을 때 다른 리더십 요소가 필요한 상황에 갔을 때 다소 손해 보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가 옛날, 50년 전만 생각해봐도 농사짓는 사람이 조합장이 된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공장에 있던 근로자가 사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지금은 그 벽이 너무 가까워져서 농사짓는 사람이 조합장되기도 하고 국회위원이 되기도 하고 생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장이 되기도 하고 노조위원장이 되기도 하죠. 격이 굉장히 좁아진 거예요.

지금 자기가 할 수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10년, 20년 지나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을 거예요. 마치 기술과 리더십이 멀리 있다가 가까워졌듯이 지금은 멀리 있다고 느낀 분야들이 다 접목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왜냐면 모든 지식과 모든 기술을 공유하는 밴드가 점점 좁아지고 있거든요.

지금은 공차는 박지성이 경영을 한다고 하면 이상한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 공 잘 차는 박지성이 축구 구단주를 이끌어야지 왜 엉뚱한 사람이 구단주가 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지금 우리 방송사에도 엄기영 씨가 대표하고 그러잖아요. 뉴스 앵커 하셨던 분이죠.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지금은 그 동네가 뉴스 하는 동네이고 뉴스가 방송에서 굉장히 중요하니까 할 만 하다고 생각하죠.

테크노 리더십을 통해서 내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크로스오버와 더불어 분야 간의 갭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좁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스피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는 스피드를 믿으셔야 해요. 이 스피드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Q.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미래에는 포지션이 없어지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영향력만 있는 거예요. 사실 리더십을 한 단어로 하면 영향력이에요. 이 사람이 대통령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대통령에 버금가는 리더십을 발휘하느냐 하지 않느냐 이죠.  예를 들어서 왕이 있고 대통령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왕이 하는 일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왕이라는 포지션에 의해서 영향력을 갖고 있거든요. 그분의 역할은 중심적인 것을 보여주는 거죠.

중요한 것은 권위, 포지션에 의한 자동적인 자기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테크노 리더십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서 많이 흘러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 관리자는 포지션에 연연하고 리더는 영향력에 연연한다고 하죠.

어떤 투자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이 있고 말단이 있어요. 그런데 사장이 이야기하는 주식투자 종목들은 판판히 깨져요. 그런데 말단이 이야기하는 것은 100% 다 맞아요, 그럼 사장 말단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말단이 굉장히 중요한 영향력을 조직 내에서 행사합니다. 그 사람이 대리든 과장이든 아무 상관없이.

그 사람은 조직 내에서 관리자로 본다면 대리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미래의 종목투자를 선정할 때는 큰 리더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직함이나 직위를 볼 때는 관리의 기능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보는 것은 리더십을 바라보는 것이죠.

우리는 그런 구분을 해둘 필요가 있어요. 내가 관리를 공부하고 있는지 리더십을 공부하느냐? 내가 매니지먼트를 이야기하고 있느냐? 리더십을 이야기하고 있느냐? 우리나라의 국가 경영체계, 국가 관리체계로 볼 때는 대통령이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시대를 넘어가면서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리더는 누구냐? 그건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어요. 시민일 수도 있고 국가원로일 수도 있어요. 우리 사회를 가장 중요하게 이끌어가는 어떤 힘이 있는데 그 힘이 이 시대 대한민국의 리더십이에요.

테크노 리더십에서 그런 권위나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테크노 리더십의 화두가 기술이 미래를 이끌어간다는 것이거든요. 기술이 미래를 이끌어갈 때 그 언저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 누구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뭐냐?

그것이 바로 테크노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거죠. 비전이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고 소통이 가능해야 하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방향대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해요. 여기에 포지션이 끼어들 자리는 없는 거죠. 어떤 표지션이든 그런 큰 기술영향력에 동참하면 되는 거니까요.



Q. 크로스 오버에 강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
분야의 크로스오버는 지금 시대가 노동집약적 시대에서 기술집약적 시대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많이 필요하던 환경에서 노하우로 가는 시대가 된 거죠. 그게 꼭 리더십만이 아니라 세계가 그렇게 변하는 거예요.  어떤 제품이 성공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기술이 만들어지더라도 생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죠.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이게 또 팔려야 해요.

T, P, M 봉우리를 만든다고요. 그럼 그 노력이 기술에 비해서 마케팅 하는 노력이 100배, 10000배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기술 따로 생산 따로 마케팅 따로 나눠져 있었어요. 사람이 넘쳐나고 노동집약적이니까 영업하는데 수백, 수천 명이 붙고 기술도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분야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기술, 생산, 마케팅을 비교적 덜 산업에 의존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크로스오버를 시킬 수밖에 없어요.

크로스오버 하는 사람이 똑똑한 게 아니라 크로스오버에 강한 조직이 살아남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해요.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마케팅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마케팅을 이해하는 사람이 생산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디자인도 마찬가지에요. 디자인이 있고 브랜드가 있단 말이죠. 설계, 브랜드, 명성. 이것도 봉우리에요. 설계사가 브랜드나 명성을 남의 일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고 설계하는 사람이 브랜드도 걱정하고 명성도 쌓아야 하는 거예요. 크로스오버가 시장 상황상 발생하는 거예요. 능력이 있고를 떠나서 그렇게 된다는 거죠.

리더십도 전략이 있어요. 방향을 만들어야 해요. 그 다음에 소통을 해야 해요. 소통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하죠. 이 세 가지 이슈를 크로스오버 해야 하는 거죠.

저는 테크노 리더십은 크로스오버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기술을 아는 사람은 영업도 알아야 강해질 수 있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존은 이미 크로스오버를 전제로 시작되어서 이제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경영을 모르고 반대로 경영을 아는 사람이 기술을 모른다면 뒤처지게 되어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의 리더십은 뭔지 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미 지식의 배리어가 낮아졌어요. 옛날에는 기술 배운 사람이 마케팅을 배우려면 너무나 힘들었어요. 책에 대한 정보 습득력과 원천자료의 확보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계속 강요를 당하죠. 모든 경영자는 회사의 알파에서부터 오메가까지 알아야 한다고 계속 눌러요.

직원들이 다 자기 일을 하지만 대표가 갖고 있는 고민을 어떤 형태든 간에 이해하고 공감하고 부분적으로는 필요할 때마다 도와줄 수 있기를 기대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회사가 대충은 다들 역할이 정해져 있지만 전체적인 시너지를 기대하면서 나아가길 바라는 거죠.

테크노 리더십에 대해 내가 3년 전에 쓸 때는 기술을 배운 사람이 경영을 알아야 성공한다는 투로 강조를 많이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보니까 여러 범주에 걸친 지적 역량과 대인관계 역량, 리더십 역량이 필수요인이 된다는 겁니다.


Q.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셀프리더십 같은 강의도 하기도 하고 책도 쓰면서 개인의 실행력을 많이 높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얼마 전에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대부분 택시라는 직업에 대해서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다른 걸 정 하다가 안 되면 일반 택시를 해서 그야말로 몇 달만 하고 그만 둘 심산으로 하는 것이 택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택시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서 택시 서비스가 안 좋다는 거죠. 왜냐하면 평생 할 직업이 아니고 그냥 몇 달 하려고 왔기 때문에 얼마나 관심 없이 열정 없이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근데 그 택시아저씨가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가 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요즘 좀 열심히 살면 밥을 먹고 살만한 사회죠. 요즘은 자기가 얼마나 우아하게 먹고 사느냐 못 먹고 사느냐 이런 이야기는 있을지 몰라도 자기가 성실하게만 살면 절대 굶을 일은 없다는 거죠. 최저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다는 거죠.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최저생활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데 우리는 지금 실업률에 시달리고 해외근로자들이 들어오고 막상 공장 같은 곳의 험한 일들은 사람을 못 찾아서 오히려 더 아우성인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결론은 이런 거죠. 힘들지 않고 먹고 살게 되면 좋겠다.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좀 인생을 영유할 수 있는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개념이에요. 이 시대가 찾고 있는 직장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직장구조와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느끼는 직장에 대한 관점이 괴리가 있습니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같은 세대는 ‘무엇을 하는가가 뭐 그리 중요해.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하면 되는 거지.’ 라고 하지만, 젊은 세대는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길러졌는데. 내가 그렇게 기대이하의 일을 할 수 있나. 안하면 안했지 난 그렇게 못해.’ 라며 선택의 폭을 좁혀 놓습니다.

또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제조업은 줄어들고 서비스업은 늘어나고 실제적으로 기계들이 대체해서 서비스와 같은 영역들이 아니라면 직장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조금 자유로워지라는 거죠.

그것이 뭐냐면 우리는 유교문화가 있습니다. 남을 굉장히 많이 의식합니다. 우리나라가 싫어서 사람들이 해외 이민을 갑니다. 그런데 이민 가신 분들이 무엇을 하느냐? 거기가면 청소도 하고 야채가게도 하고 정말 한국에서 못했을 일들을 미국에서 하고 호주가서 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 한단 말입니다. 보이는 곳에서는 못하고.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너무 남을 의식하며 삽니다.

제가 볼 때 우리 젊은 세대의 장점은 비교적 남을 덜 의식하고 자유롭고 솔직합니다. 이 장점을 살려서 직업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최근에 아이 셋을 둔 여자 분이 환경미화원 일을 한다고 해서 TV에 나오고 대단하다고 생각을 되는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모습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돈을 어떻게 벌든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그러한 돈 버는 과정, 돈을 쓰는 과정에 얼마나 자율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는가? 이런 것에 관점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명문대, 좋은 과를 가려고 노력해서 쫓는 과정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위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과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열정, 집중력들을 배우는 기관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 훈련이 되어 있으면 내가 무엇을 하던 간에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은 직업은 한정되어 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메카니즘은 많이 개발 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만 부지런히 해도 충분히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어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경제 소스를 가지고 있단 말이죠. 다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우리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번듯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할 뿐이죠.

크게 보면 이런 실업난이나 직업을 찾는 사람과 경제구조의 언밸런스를 배우는 방법은 우리 젊은 세대가 훨씬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다 고민하지만 전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누가 공부를 제일 잘하느냐? 애당초 자기가 공부에 관심 많아서 대학에 온 사람들이 공부를 제일 잘한다. 그 다음에 누가 공부를 잘 하냐 내가 보기에는 전문대를 갔다 던지 늦게 대학에 왔다 던지 인생 공부, 고생 많이 하고 들어 온 사람들이 대학 공부 잘한다고 했어요. 그럼 누가 대학에서 대학시험 제일 못 보는가, 마치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양, 나는 마치 더 좋은 대학 갔어야 하는데 잘못해서 여기 온양 후회하면서 대학생활 보내는 사람이 공부를 제일 못한단 말이죠.

직업도 똑같습니다. 직업도 내가 어느 직장에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첫 째가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직장에 가는 것이 베스트. 내 장점을 살릴 수는 없지만 인생을 많이 알아서 내가 갖고 있는 환경과 직업도 고마운 것임을 인정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어느 곳에 가던지 여긴 내자리가 아니라는 회의적인 사고로 산다면 어떤 직업군의 형태가 형성이 된 다 하더라도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 상당히 불행하게 적응할 수 있는 그룹이라는 거죠. 그래서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셀프리더십,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그런 시도를 많이 하는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문턱을 넘어서 사회에 배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
저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은 리더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친구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나가보면 내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준 사람이 가장 큰 리더가 되는 거죠. 제가 우리나라에서 리더십을 쭉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우리는 리더십 전체를 봅니다. 이상하게 망가져 보이고 잘못 되어 보이고 그렇습니다. 포항에 가면 박태준 기념관이 반대가 많아서 건설이 안 되고 요즘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는 미래공원도 또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지역이든 흘러간 과거의 리더들을 좋은 모습으로 기리려고 할 때에 그분들의 잘못되고 부족한 부분 때문에 반대파들이 있고 해서 조명되지 않고 과거 리더들의 부족함이 자꾸 조명되는 과도기에 있다 보니까 우리나라 전체 리더십을 보면 참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제가 그분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참으로 그렇게 훌륭한 분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여태까지 만나 본 많은 분들이 ‘아 저분은 저렇기 때문에 훌륭한 리더가 되었다.’는 그런 측면을 거의 못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이 훌륭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슨 이야기인가 하면 우리는 자꾸 리더를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완벽한 인간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완벽한 여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형은 완벽한 남자일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주었는가, 입니다.

그 리더의 완벽성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영향력에 의해서 평가 되어져야 하는 겁니다. 내가 영향력을 잘 받으려는 준비만 되어 있으면 어떤 리더를 만나도 굉장히 훌륭한 리더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 세대가 자기가 배우고 싶은 리더를 볼 때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굉장히 좋은 리더들을 많이 만날 겁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들이 저 사람이 한 개인으로써 얼마나 흠 없는 리더인가 이렇게 찾기 시작하면 아마 대한민국에 흠 없는 리더 한명도 없을 겁니다. 포인트가 그 사람의 리더십이 얼마나 탁월한가, 얼마나 좋은 리더인가 하는 개념보다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인가, 우리나라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가, 우리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큰 리더십을 발휘했는가, 그런 영향력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우리사회에 좋은 리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신완선 - 1959년 충주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로 일하며 품질혁신센터의 센터장과 한표컨설팅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셀프 리더십: 파이팅, 파브>, <우리 짱한테는 뭔가 비밀이 있다>, 등이, 옮긴 책으로 <품질경영 명상록>, , 등이 있다.


테크노 리더십 - 10점
신완선 지음/김영사

저작자 표시
posted by 혜민아빠
2008/11/20 13:02 저자를 만나다
저자는 법이라는 것은 어썬 사실 확정을 하고 사실이 확정이 되면 거기에 어떤 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법적인 효과 부분만 초점을 맞추는데 실제로 사실을 파악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고 또 괴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 제목이 <디케의 눈> 정한 것은? 법의 여신 디케는 한쪽에 칼을 들고 한쪽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것을 말한다. 눈을 가리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을 배체하고 객관적으로 보자는 취지인데 저자는 사실 관계란 것이 굉장히 알기가 어려운 것에 초점을 맞춰서 쓰다보니까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케의 눈> 책의 저자 금태섭님 인터뷰 내용이다.


“법조와 국민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어 법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우리 주변의 법은 비현실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두꺼운 법학서적을 펼쳐보는 법학도나, 공판중심주의와 배심재판 등 언론에 등장하는 법률 용어에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을 뒤지는 직장인에게나 법은 도무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고 어렵기만 하다. 법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만날 수 있는 책은 두꺼운 법학 교과서나 혼자서도 소송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실용서 들이 대부분이다.

금태섭 - 금태섭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서울지검 동부지청, 통영, 울산, 인천에서 검사로 근무했고 대검찰청 검찰 연구관을 지냈다. 장기 해외연수기간 중 코넬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Q. 법정에서 오판, 없어지지 않는 이유
예전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오판을 하게 되는 것은 증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형사재판 같은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거짓말을 해서 오판이 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지 않고 공정하게 하려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실을 얘기하면 오판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저희는 추측을 했어요.

그런데 그 믿음은 유전자 감식 방법이 1980년대 중반부터 사용되면서 깨져버린 거죠. 예전에 성폭력범으로 수감 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해보자 했더니 미국에서만 100명 넘는 사람이 무죄로 밝혀졌습니다. 유전자 감식이라는 것은 성폭력 범죄에서 주로 의미를 가질 수 있거든요.

오판이 성폭력 범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범죄까지 하면 얼마나 많을까? 이전에 형을 다 살고 나온 경우도 있을 것이고 사례들을 분석 해보면 처벌 받은 사람에게 원한 관계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합의를 보려고 거짓말을 해서 꼭 오판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는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아무 사심 없이 하는데도 오판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목격자에 기초한 재판에 대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고 좀 더 정밀하게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하고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하죠. 실제로도 오판이 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Q. 사형제도는 없어지는 게 좋을까?
사형에 대해서는 존치론과 폐지론이 많이 있어요. 형벌에는 분명히 응보형주의가 있는데, 사형 존치론자와 폐지론자가 부딪치는 논리 중에 가장 큰 것이 사형이 존재해서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거예요.

정말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사형시키면 범죄가 줄어드는지에 대해 사형 폐지론자들은 ‘실제로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는 범죄가 늘지 않는다. 사형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존치론자들은 ‘통계숫자만으로 볼 수 없는 사형이 갖는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고 해요.

여러 가지 논리를 쭉 검토해보면 존치론에 분명히 경청할 점이 있고 맞다고 생각되는 점도 있고 실제로 우리나라 여론에는 존치론자들이 훨씬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폐지론을 주장하는데, 오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논거를 갖다 대더라도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저도 다른 여러 가지 논리를 지지하고 ‘전 지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것이 한 사람의 생명인데 그걸 사회가 끊을 수 없다.’는 의견에도 동의하지만 다른 모든 논리보다 제게 호소력이 있는 것은 오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형은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월간조선의 편집장을 하시나요? 조갑제 씨가 젊어서 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건 오판이라는 의심이 굉장히 많이 듭니다.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로 사형대 앞에 선 사람 앞에서는 아무리 존치론에 맞는 논리가 있어도 폐지론에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렇게 말을 하면 ‘확실한 사람만 사형시키면 되지 않나?’라는 말을 하죠. 예를 들면 유영철. 21명을 죽인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1건은 무죄로 20명을 죽인 사람이 맞아요. 과연 얼마나 확실해야 확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판으로 죽은 것 같아 보인다는 오휘웅 씨 같은 사람도 판사나 검사나 사형 구형을 하고 판결을 내릴 때는 아무렇게나 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고민하고 나름대로는 정말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안 죽였다고 하는 데도 사형을 시킨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오판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한 사건만 사형에 처하자는 주장도 틀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판사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나라 형량제도
형량은 굉장히 문화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각국의 제도들이 다 다르고 어떤 나라들은 양형 기준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약사범이라고 하면 마약을 판매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투약했는지 소지하고 있는 마약의 양이 얼마인지 해서 형량을 거의 기계적으로 정해놓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상당한 재량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형선고는 10년을 하고 실제로는 3년 살고 가석방 되는 경우도 있죠.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형량이라는 것은 문화적이고 사람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춰지는데 우리나라 형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가볍습니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과학적인 분석이 덜 되어 있고 심지어 판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구치소 같은 곳에 가보면 자기들끼리 재판을 열고 ‘너는 그 판사 걸렸으니까 죽었다.’ 이런다고 해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밀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실제로 검사 생활을 할 때 겪은 일인데요. 예를 들어 음주운전이라 하면, 지방의 어떤 판사님은 굉장히 관대하게 ‘사람이 음주운전 한, 두 번 할 수 있지 않냐?’ 하셨는데 갑자기 다른 판사님이 오셨어요. 그런데 이 분은 음주운전에 대해 엄격하신 분이라 예전 같으면 벌금을 낼만한 사안도 실형 선고를 해서 복역을 하게 했었어요. 어느 쪽 태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판사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양형에 관해서는 법원 자체에서도 세미나를 많이 하고 또 올해부터는 양형위원회를 대법원에 만들어서 합니다. 양형기준을 만들어서 공개도 할 계획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Q.형벌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형벌의 목적은 응보형주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자기가 저지른 죄의 비슷한 정도로 벌을 받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은 칸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지금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죄수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말한 것처럼 그런 태도.

그 다음에 상대형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형벌을 어떤 목적으로 보는 것이죠, 첫 번째로 일반적  방주의 형벌을 가함으로 인해서 사회에 겁을 주는 겁니다. 어려운 말로 자기들끼리 위하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징역 몇 년을 산다는 걸 보여줘서 잠재적인 범죄자들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또 하나는 특별예방주의라고 하는 것인데 그 범죄자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처벌함으로 인해서 사회에 겁을 준다는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것인데 그건 안 된다는 거죠. 이 사람의 범죄적인 성향을 없애기 위해 교정한다는 거죠.

특별예방주의로 보면 징역 1년, 2년 이런 것이 아니라 단기로는 1년, 장기로는 2년이라 해서 사람이 교정되는 것을 보고 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이론상으로는 타당한데 실제로 교도소에 가서 보면 사람이 개과천선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고 재범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럼 특별예방주의만으로는 형벌의 목적을 설명하기 어렵고 많은 법률가들이 실제 경험을 통해 응보형주의가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죄를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절대적 정의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저도 그런 생각이 상당 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Q. LA폭동과 두순자 사건
두순자 사건은 사실 무죄나 정당방위로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유죄로 선고가 났고 그 판사는 특별예방주의의 측면에서 선고를 한 겁니다. 이 사람이 겪은 걸로 봐서 이렇게는 되었지만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사람이라 판단한 거죠. 감옥에 가둔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 없고 내보낸다고 범죄를 저지를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익하게 가둘 필요가 없다고 해서 집행유예로 석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검사가 최고형을 선고했는데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흑인소녀를 죽였는데 그냥 풀어주면 흑인사회가 들고 일어난다는 거였어요. 검사는 희생양을 세워서라도 사회를 잠재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두순자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원인(수도 없이 많이 범죄의 피해를 겪으면서 느꼈던 공포심)을 보고 향후 이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나갈 것인가를 보면 당연히 집행유예를 선고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이 LA폭동 때 흑인들에게 한인들이 공격당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수단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에 폭동을 막기 위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미란다 사건이 유명해진 배경
미란다 경고를 요즘은 우리나라 경찰들도 다 하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여기서 한 말은 당신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미란다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다들 모르죠.

미란다의 본명은 어네스트 미란다로 연쇄성폭행범입니다. 연쇄성폭행범이라고 하면 아주 두려운 대상일 것 같지만 아주 치졸한 범죄자로 주로 여자들을 차에 태워서 하소연도 하고 성폭력을 하려다 잘 안 되면 돈만 뺏어가기도 하고 몇 번에 걸쳐 성폭력미수에 그쳤어요. 그러다 결국 성폭력을 저지르고 잡혀서 조사를 받게 됩니다.

조사 과정 중에 경찰관이 한 쪽에서만 보이는 유리를 두고 그 동안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불러서 보여줬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것 같다는 대답을 해서 경찰관이 실망을 합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니까 어네스트 미란다가 ‘피해자들이 절 알아봅니까?’ 물어보는데 경찰관이 노련한 사람이라 ‘자네에게는 안 될 말이지만 다 자네가 틀림없다고 한다.’ 이야기를 해요. 그랬더니 미란다가 ‘그럼 제가 자백하겠습니다.’ 털어놓은 겁니다.

거기서 경찰관은 미란다에게 한 마디 욕도 한 적이 없고 고문을 한 것도 없고 강압적으로 자백을 강요하지도 않았죠. 당연히 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받은 것이고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능력 있는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수사관은 항상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아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때가 워렌 대법원장 시절이라 시민적인 자유에 대해 기념비적인 판결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일단 모든 피의자, 피고인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하고 단순히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이 있다고 법에 규정된 것뿐만 아니라 알려줘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누구든지 경찰서에 들어와서 심문실에 앉아 있으면 위축되기 때문에 단순히 법에 규정 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에게 권리를 알려줘야 한다는 이슈가 있을 때였어요. 미국 대법원에서 미란다 사건을 뽑아내서 그 사건으로 한 겁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틀렸다고 할 수 있죠. 연쇄성폭행범이 분명하고 본인도 인정했는데 미국 대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그 경찰관이 들어와서 ‘당신은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안 해줬다는 이유로 그걸 증거로 쓰지 못하고 무죄 석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굉장히 반론도 많았고 그 당시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그럼 누가 자백을 하겠냐? 수사는 어떻게 하냐? 흉악범들이 거리를 활개 칠 것이다.’라는 얘길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안 되고 억울한 피고인을 잡아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정말 나쁜 흉악범도 수사 절차가 적법하지 못하면 풀려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미란다는 치졸한 성폭행범이었고 이걸로 인해 미란다가 석방 되었다가 다른 증거에 의해서 다시 재판을 받고 10년형을 살았습니다. 10년형을 받고 복역했고 결국 정의는 이루어졌죠. 그 다음에 석방이 되었는데 석방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술집에서 싸우다 칼에 찔려서 죽었습니다. 굉장히 비참한 최후를 맞는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을 통해서 이런 권리가 정착된 것이죠.

미란다를 찔러 죽인 사람을 체포했는데 체포한 경찰관이 우연히도 예전에 미란다를 체포했던 경찰관이었어요. 이번에는 그 경찰관이 ‘당신은 진술거부권이 있고…….’ 이 이야기를 해준 것이죠. 그런 기념비적인 판결입니다.


Q. 재판에는 일반 시민이 참석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건 자체의 내용에는 관심이 좀 있는데 법적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다른 나라보다 흥미가 덜 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법률가부터 반성을 해야 하는 게 법이 너무 어렵습니다. 용어도 어렵고 지겨워서 일반 시민들이 보시기엔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몰라요. 법률가도 법정에 앉아있으면 도대체 무슨 재판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있는데 용어도 쉽게 바뀌어야 하겠지만 정말 바뀌는 계기는 재판에 일반시민들이 참석하게 되면 변합니다.

배심제를 하게 되면 검사는 유죄를 받고 싶어 하고 변호사는 무죄를 받고 싶어 하는데 일반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까 어려운 용어를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쉬운 말을 쓰고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데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배심재판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시행되고 있어요.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 같은 경우 관심이 많고 일반 사람들이 알기 쉽다고 하지만 1930년대에 나온 글들을 보면 유명한 예일대 교수가 쓴 ‘저주받으리라, 법률가들’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법률가들이 옛날의 주술사들처럼 어려운 말을 써서 사람들이 못 알아먹게 한다는 비판을 굉장히 많이 겪으면서 지금처럼 알기 쉬운 것이 된 거죠.

그리고 대부분의 구조문제는 저도 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삼세번 재판을 해야 승복이 되고 어쨌거나 내 사건도 대법원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개선이 잘 안 되는데요. 사실 2만 건 정도 되는 사건을 대법관이 하다보면 아무리 자기 사건이 올라가도 깊이 있게는 못 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이 있고 사회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 사건을 몇 건만 선정해서 심층적으로 보는 거죠. 사건 수가 적어지면 대법관들도 보지만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어서 여론도 형성되기 때문에 그렇게 고쳐나가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을 비롯해서 법률적인 문제들이 나오면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대법원에 가지 말란 말이냐?’며 심정적인 것에 휩쓸리는데 논리적으로 보다 보면 또 다른 쟁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것을 설명하려고 이 책을 쓴 겁니다.


Q. 법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유?
법은 원래 느리죠. 법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애초부터 될 수는 없고,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거예요. 사회변화를 법이 빨리 반영을 해야 하는데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항상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는 법이 너무 규제의 수단으로만 쓰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현상, 예를 들어 인터넷이 나왔다고 하면 어떻게 이것을 지원해줄까를 먼저 생각하고 부작용을 규제해나가야 하는데 우리사회는 무언가 새로운 현상이 생기면 그걸 규제할 생각부터 합니다. 사업을 새로 해보려고 할 때도 법을 보면 어떻게 하라는 것은 없고 하지 말라는 것만 잔뜩 있다고 해요.

요즘 인터넷 규제와 관련해서 나오는 발상들이 그런 측면의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인터넷실명제 법 규제화는 옳은 걸까?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먼저 오는 것이고 그 다음에 부작용을 규제하는 것이지 법이 허용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법이 이만큼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만큼만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작용이 있으면 부작용에 대해서만 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죠.

실효성 측면에서 봤을 때, 과연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하고 댓글을 다 없애면 그게 없어질까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다 외국서버-야후 재팬에 가서 댓글을 달기 시작하고 야후에서 한글기능도 달아준다고 하면 규제가 불가능해지거든요.

법이라는 것은 한번 규제하기 시작하면 규제를 해야만 실효성이 있고 존중을 받게 되는데 실효성이 없는 것을 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법을 통해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을까?
범죄가 완전히 없는 사회는 없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근무를 하다 지방에 내려가서 2년을 있었는데,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구속되어 왔던 피의자가 ‘검사님, 저 모르시겠어요?’ 물어봐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1년 6개월 전에 제가 처음 왔을 때 이 방에서 조사받고 형을 살았는데 나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또 들어온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범죄율이 높아졌다 낮아지기도 하고 예를 들어 우리 사회 같은 경우에는 치안이 굉장히 안전하잖아요. 밤거리를 안심하고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죠. 밤늦은 시간에는 굉장히 조심해야 하고 위험한 도시도 있어요.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노력으로 범죄자들의 수를 줄이고 범죄수법이 잔인해지거나 흉포해지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3년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해서 사람이 더 착해지느냐? 아니면 오히려 그 속에서 범죄를 배우고 나와서 재범의 확률이 늘어나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한 건, 한 건을 보면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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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민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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